느낌이 있는 좋은시. 좋은글

밤에 쓰는 편지 -나호열-

개미소녀 2012. 8. 17. 21:13

안개비가 자욱이 내리던 우리동네 동막골 잔차타던 길

 

밤에 쓰는 편지/나호열

먹을 갈아 정갈해진 정적 몇 방울로 편지를 쓴다
어둠에 묻어나는 글자들이 문장을 이루어
한줄기 기러기 떼로 날아가고
그가 좋아하는 바이올렛 한 묶음으로 동여맨
그가 좋아하는 커피 향을 올려 드리면
내 가슴에는 외출중의 팻말이 말뚝으로 박힌다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그의 먼 안부
동이 트기 전에 편지는 끝나야 한다
신데렐라가 벗어놓고 간 유리구두처럼
발자국을 남겨서는 안 된다
밤에 쓰는 편지는 알코올 성분으로 가득 차고
휘발성이 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가 깨어나 창문을 열 때
새벽 하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푸르러야 한다
맑은 또 하나의 창이어야 한다
오늘도 나는 기다린다
어둠을 갈아 편지를 쓰기 위하여
적막한 그대를 호명하기 위하여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그의 먼 안부"는 얼마나 가슴시린 말인가

어둠을 갈아서 쓰는 편지는 그의 문앞까지 도달할수 있을까

창밖이 어렴풋이 밝아올때 잠에서 깨어나면

마음이 괜히 서글퍼진다

동이 터오는 풍경은 아름다운데 나는 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하나 둘 떠올리게 된다

오늘 하루도 그이들이 맑은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수 있기를...

힘든 상황에서도 한번쯤은 활짝 웃는 하루가 되기를..

이제는 많이 높아져가는 하늘을 한번쯤은 바라보고 가슴한번 활짝 펴기를...

나 또한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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