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좋은시. 좋은글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고정희-

개미소녀 2012. 8. 24. 07:13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 밟습니다.

내가 위로받고 싶고 등을 기대고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고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날 분별없이 뿌린 말의 씨앗,

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 말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란 나이를 제대로 꽃피우기란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 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 락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 없는

내 사지에 돌을 눌러둘 수는 없습니다.

 

 * 내 마음속의 여러 상념들도 깨끗하게 씻어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또한 시인처럼 그냥 멍에로 지고 가야 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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