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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했다는 사실(느낌표님 좋아하는)

개미소녀 2012. 4. 24. 19:59

 

사랑했다는 사실

 

사랑에 실패란 말이 무슨 말이냐

넓은 들을 잡초와 같이

해지도록 헤맸어도 성공이요

맑은 강가에서

송사리같은 허약한 목소리로

불러봤다 해도 성공이요

끝내 이루지 못하고

혼자서만 타는 나무에 매달려

가는 세월에 발버둥쳤다 해도 성공이요

꿈에서는 수천 번 나타났다

생시에는 실망의 얼굴로 사라졌다 해도 성공이니

기뻐하라

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라

                   (시인의 사랑32쪽/혜진서관/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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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라.

늘 제 친구가 하던 말입니다.

사랑, 그것과 헤어지고 혼자 남은 그녀를 위로하려드는 제게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는 그랬지요.

"사랑했잖니, 그럼 되었지 뭐!" 하였어요.

사랑, 그에게 받은 것은 기억에도 없던 그녀는 그래도 사랑했으니 됐다고 합니다.

마음이 슬프거나 상하면 속쓰림이 심해지는 제게 그녀는 입꼬리 웃으며 말하였지요.

"나 때문에 속 쓰리지 마"

그 말에 움찔 속으로만 주저앉으며 그녀에게 궁시렁댑니다.

"뭣놈의 사랑이 이러냐? 참 모를 것이야. 그넘의 징글거리는 사랑" (한참 투덜투덜)

"껄껄, 그럼 우리 둘이 결혼할래?" 하던 말에 비로소 웃었던

제 심각한 위로법이 통하지 않던 그녀가 그립습니다.

끝내 이루지 못한 시린 사랑 하나 안고

"사랑했으니 좋지 뭐!" 하고 길 떠난 그녀가 아프게 보고 싶군요.

찬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발길하며 지금도 여적지 낯선 어느길 위에서

사랑했다는 사실 하나로 기뻐하며 견디고 있을 그녀가

강건과 평온으로 어서 제게 돌아오길 오래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0년 11월 11일 올린 시입니다.느낌표님 좋아하시는 시라 하여 다시 올려보며

 여적지 돌아오지 않은 친구가 그립습니다. 그녀는 어디 있는 것일까요?)

출처 : 이생진, 바람이 시가 되어
글쓴이 : 차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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