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좋은시. 좋은글

계절의 여왕 5월

개미소녀 2012. 5. 1. 09:06

사월을 몸으로 느껴보기도 전에 사월이 가고 오월이 왔다

봄꽃 몇번 보고 나니 사월이 내곁에서 사라졌네

어릴적 모내기철이 되면 들에 하얗게 피어나던 찔레꽃 무더기..

뒤안에 장독대 옆에 있는 앵두꽃이 하얗게 피고 앵두가 빨갛에 익어가면

너무 고운 그모습에 손에 가득 따서 선뜻 먹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내고향 들판에 피어나던 찔레꽃도 그립고 조카를 등에 업고 들에서 모내기 하던

올케언니를 찾아가던 논둑에는 쑥이 지천으로 돋아나고 어이~~ 어이~~ 하며 못줄잡던 동네 아저씨도 그립다

정성들여 심어놓은 모가 자라나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일렁이던 모습이 눈에 아른하게 그립다

그 초록빛을 어린나이에도 무척 좋아했는데...

올해는 둘째오빠네 모내기 할때 고향들녘에 가볼까나..

기계로 모든 농사를 지어서 예전의 그리운 풍경은 볼수 없어도 어리고 파릇한 그 모습을 보고싶다

 

 

 

찔레꽃 사랑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한다
풀과 나무는 물론 세상 무엇이든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으면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 넘치고 넘쳐 마침내
찢어진 가슴 열며 상처투성이 꽃
왈칵왈칵 구구절절이 피워내는 것
그리고 아픔이 큰 꽃일수록
고웁고 향기 더 나는 것

사랑은 아프게 해야 한다
꽃이 아프게 피어나듯
가슴이 찢기도록 해야 한다
상처는 정녕코 아름다운 것이므로

아, 저 하늬 길목 갯도랑 찔레꽃
한겨울을 얼마나 아파했을까
온몸 가시에 뚫리는 고통 견디며
누굴 저리 활활 사랑했을까
(양전형·시인, 제주도 출생) 
 



 찔레꽃의 전설

봄이면 산과 들에
하얗게 피어나는 찔레꽃

고려시대 몽고족에
공녀로 끌려간
찔레라는 소녀가 있었다네

십 여년 만에 고향 찾은 찔레 소녀
흩어진 가족을 찾아
산이며 들이며 헤매다
죽고 말았다네

그 자리에 피어난 하얀 꽃
그리움은 가시가 되고
마음은 하얀 꽃잎, 눈물은 빨간 열매
그리고 애타던 음성은
향기가 되었네

내 고향 산천 곳곳에 피어나는
슬프도록 하얀 꽃
지금도 봄이면
가시덤불 속
우리의 언니 같은 찔레의 넋은
꽃으로 피네.
(최영희·시인)

 


 찔레꽃

아프다 아프다 하고
아무리 외쳐도

괜찮다 괜찮다 하며
마구 꺾으려는 손길 때문에

나의 상처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남모르게
내가 쏟은
하얀 피
하얀 눈물
한데 모여
향기가 되었다고

사랑은 원래
아픈 것이라고
당신이 내게 말하는 순간

나의 삶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축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라일락

당신, 라일락꽃이 한창이요
이 향기 혼자 맡고 있노라니
왈칵, 당신 그리워지오

당신은 늘 그렇게 멀리 있소
그리워한들 당신이 알 리 없겠지만
그리운 사람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오

어차피 인생은 서로 서로 떨어져 있는 거
떨어져 있게 마련

그리움 또한 그러한 것이려니
그리운 사람은 항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런가

당신,
지금 이 곳은 라일락꽃으로 숨이 차오
(조병화·시인, 1921-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