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좋은시. 좋은글

사랑한다는 것은...

개미소녀 2012. 2. 3. 08:00

사랑  -안도현-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 되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두려움으로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하소서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

소금처럼 하얗게 남게하소서.

 

 

사랑한다는 것  -안도현-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 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오래 고통받은 사람은  -이성복-

 

오래 고통받은 사람은 알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쳐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 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 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받은 사람은 알것이다.

그토록 피해 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

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볼,

 

오래 고통받은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불길  -김용택-

 

지금

내 마음은 불입니다.

불이어서 타는 두렴움을 모릅니다.

혼신을 다해 탈 뿐입니다.

잡지 못하는 이 불길이 두렵습니다

우리에겐 불이 아니고

언 강 밑으로 흐르는 물이 되어도 좋을 것을.

 

내 물길은

언 강 밑으로 흐르지 못하고

강둑에서 불로 타오르며 번져만 가니

아, 아

나는 당신을

이 불길로 당해낼 재주가 없어요

 

 

내사랑  -김용택-

 

당신은

내 깊은 잠을

문득 문득 꺠웁니다

당신은

바삐 걷는 내 발길을

문득 문득 멈추게 합니다

당신은

문득 내 생각을 가져가 버리고

문득 내 말문을 닫게 합니다

당신은, 그런당신은

어떤 사람들이 용공이라 해도

내 사랑입니다

 

 

 

사랑  -황학주-

 

혼자 사는 사람이니까 집 밖에서 햇빛을 더 보고 싶은 나는

꿈이 서럽도록 가벼우니까

날이 얇으니까 깊이 찔러넣은 꿈일 줄 모르고

사랑은 피흘리는 동작이니까 밤새도록 비닐봉지 같은

정신의 가운데가 마구 째진 다음

뛰쳐나와 겨울에 밖에다 얼려서 한 숟갈씩 뜨는 눈물방울들이

뭉개진 고구마 살처럼 진하고 큰 줄 모르고..

 

 

비의 사랑  -문정희-

 

몸 속의 뼈를 뽑아내고 싶다.

물이고 싶다.

물보다도 더 부드러운 향기로

그만 스미고 싶다

 

당신의 어둠의 뿌리

가시의 끝의 끝까지

적시고 싶다

 

그대 잠속에

안겨

지상의 것들을

말갛게 씻어 내고 싶다

 

눈 틔우고 싶다.

 

 

 

해열제  -이정록-

 

그대 보고 싶을수록

늪이 생각납니다

늘 젖어 있는 뿌리

비늘마다 물이끼 푸르른 물고기들

지느러미를 세운 채 알을 낳고

넓은 이파리 위론

배때기 하얀 개구리가

깜짝 뒷다리를 감추는 오후

하늘 한자락

콱 베어물고 우거지는 늪

깊은 가슴을 생각합니다.

내 마음 속,

악어의 이마가 펄펄 끓습니다.

 

 

목숨의 노래   -문정희-

너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같이 살자
이 말은 너무 흔했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

목숨의 처음과 끝
천국에서 지옥까지 가고 싶었다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도종환-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가슴을 저미며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눈물 없이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벌판을 지나
벌판 가득한 눈발 속 더 지나
가슴을 후벼파며 내게 오는 그대여
등에 기대어
흐느끼며 울고 싶은 그대여

눈보라 진눈깨비와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쏟아지는 빗발과 함께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견딜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럽던 시간을 지나
시처럼 오지 않는 건
사랑이 아닌지도 몰라

 

사랑하는 사람   -박재삼-

어쩌다가
땅 위에 태어나서
기껏해야 한 칠십년
결국은 울다가 웃다가 가네.
이 기간 동안에
내가 만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점지해 준
빛나고 선택받은 인연을

물방울 어리는 거미줄로 이승에 그어 놓고
그것을 지울 수 없는 낙인으로 보태며
나는 꺼져갈까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