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좋은시. 좋은글

봄비가 내려요

개미소녀 2012. 3. 2. 13:17

봄이 어디쯤 오고 있을지...

새벽부터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씩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

지금은 물기가 없는듯이 느껴지는

나무들이 저마다 꽃눈들을 달고 이제 봄을 향해 날아오를 거야 

삭막하게 보이는 우리집 창밖의 벗꽃나무에도

이 봄비가 그치고 다디단 물이 오르면

눈부신 꽃단장을 하겠지..

바람이 불면 새하얀 꽃잎이 이리저리 흩날리는 형상은

아름답다 못해 서럽다

눈부시게 화사하지만  지고나면 너무 허무한 봄꽃..

그래도 나는 봄이 기다려진다

삼척 맹방의 노오란 유채꽃밭과 그길로 가는길에 있는 눈부신 벗꽃 터널이..

봄님아!! 너는 어디쯤에서 머물고 있니?

빨리와!!

 

 

    봄 비

     

             고 정 희

 

가슴 밑으로 흘려 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구는 들판으로 달려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신 숨결 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봄  비

 

           김 용 택

 

바람이 붑니다

가는 빗줄기들이 옥색 실처럼 날려오고

나무들이 춤을 춥니다

 

그대에게

갈까요 말까요

내 맘은 절반이지만

날아 온 가랑비에

내 손은 젖고

내 맘도 벌써 다 젖었답니다

 

내 가슴에 묻혔던 내 모습은

그대 보고 싶은 눈물로 살아나고

그대 모습 보입니다

내 가슴에 메말랐던

더운 피는 그대 생각으로

이제 다시 붉게 흐르고

내 가슴에

길 막혔던 강물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아,

내눈에 메말랐던

내 눈물이 흘러

내 죽은 살에 씻기며

그대

푸른 모습

언 땅을 뚫고 솟아나는 모습 보입니다.

 

 

봄  비

 

      이 재 무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른다
보라, 젖을수록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
봄비의 혀가
아직, 잠에 혼곤한
초록을 충동질한다
빗속을 걷는
젊은 여인의 등허리에
허연 김 솟아오른다

사랑의 모든 기억을 데리고 강가에 가다오
그리하여 거기 하류의 겸손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게 해다오
살 속에 박힌 추억이 떨고 있다
어떤 개인 날 등 보이며 떠나는 과거의 옷자락이
보일 때까지 봄비여,
내 낡은 신발이 남긴 죄의 발자국 지워다오

나를 살다간 이여, 그러면 안녕,
그대 위해 쓴 눈물 대신 어린 묘목 심는다
이 나무가 곧게 자라서
세상 속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마다 그리움의
잎파리 파랗게 반짝이고
한 가지에서 또 한 가지에로
새들이 넘나들며 울고
벌레들 불러들여 집과 밥을 베풀고
꾸중 들어 저녁밥 거른 아이의 쉼터가 되고
내 생의 사잇길 봄비에 지는 꽃잎으로
붐비는, 이 하염없는 추회
둥근 열매로 익어간다면
나를 떠나간 이여, 그러면 그대는 이미
내 안에 돌아와 웃고 있는 것이다
늦도록 늦봄 싸돌아다닌 뒤
내 뜰로 돌아와 내 오랜 기다림의 묘목 심는다

 

함께 젖다

    

           윤 제 림

 

봄이 오는 강변

빗속에

의자 하나 앉아 있습니다.

 

의자의 무릎위엔 젖은 손수건이 한 장

가까운 사이인 듯, 고개 숙인 나무 한 그루가

의자의 어깨를 짚고 서 있지만

의자는 강물만 바라보고 앉아 있습니다.

 

영 끝나버린 사랑은 아닌 것 같은데

의자는 자꾸 울고

나무는 그냥 듣고만 있습니다.

언제나 그칠까요

와락, 나무가 의자를 껴안는 광경까지

보고 싶은데,

손수건이 많이 젖었습니다.

그새,

 

 

 

봄  비       

 

     김소월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 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봄비

                            -변영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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